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은 단순한 재벌가의 사생활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권력과 자본이 어떻게 결합했고, 그 결과 어떤 부가 만들어졌는지를 다시 묻는 거울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을 본 국민이라면 노태우라는 이름이 한국 정치사에서 어떤 의미였는지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12·12 군사반란과 신군부 권력 장악 과정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평가받았고, 대통령 재임 중에도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실로 형사처벌을 받았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이 퇴임 뒤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그 시대가 얼마나 불공정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흐른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권력형 불법자금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에서는 이른바 ‘노태우 비자금 300억 원’이 다시 쟁점이 됐습니다. 대법원은 이 자금이 불법적으로 조성된 성격의 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노소영 관장의 재산형성 기여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최태원의 장인이자 노소영의 아버지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부정축재한 돈 300억 원을 그 당시의 가치로 따져 보면, 강남의 은마아파트를 4개에서 5개 '동' 을 통째로 살 수 있었던 엄청난 액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파기환송심에서는 이 300억 원을 제외한 상태에서도 최태원 회장이 노소영 관장에게 9,440억 원을 재산분할하도록 하는 판단이 나왔습니다.
이 대목에서 국민이 느끼는 감정은 복잡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쪽에서는 불법자금이 문제 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재산분할 액수가 수 조원에 육박하는 숫자로 오르내립니다.
평범한 국민의 눈에는 이 장면 자체가 기가 막히고 허탈합니다.
월급에서 세금과 공과금을 꼬박꼬박 내고, 평생 일해도 내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보기에는, 수백억과 수천억, 수조원이 법정에서 자연스럽게 논의되는 현실이 너무도 멀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재산분할은 어디까지나 민사 사건이고, 그 액수가 곧바로 국민 세금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점은 분명히 구별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단순히 돈의 크기가 아닙니다. 권력의 그늘에서 형성된 자금이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의 자산 구조와 연결됐는지, 그 과정에서 공공의 권한과 사적 이익이 얼마나 가까이 맞닿아 있었는지가 본질입니다.
이 문제는 SK의 성장사와도 연결됩니다.
SK는 한때 '선경'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비디오테잎 이나 학생복, 자전거 등을 제조하던 기업으로 오늘날의 거대 그룹으로 성장하기 전에는 유공, 한국이동통신 같은 핵심 자산과 사업에 진입하며 급격히 몸집을 키웠습니다.
한국석유공사( 유공 > SK )은 원래 국가가 만든 공기업이었고, 한국이동통신, 즉, 이동통신사업 역시 국가 기간통신망과 연결된 영역이었습니다. 이런 분야는 본래 국민 경제와 공공성의 관점에서 설계돼야 했던 영역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당시 군부에서 정권을 찬탈한 최고 권력자의 딸과 사위라는 지위,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 시절에 맞추어 민영화와 인수합병, 사업권 배분의 과정 속에서 특정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가져갔고, 그 구조가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지점은 단순히 돈의 액수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인구가 5천만 명 남짓이지만, 휴대전화 회선은 이미 5천7백만 회선을 넘어섰고, 사물인터넷 회선까지 포함한 전체 이동통신 회선은 9천만 회선을 훌쩍 넘습니다.
즉, 통신사는 단순히 사람 수보다 훨씬 큰 시장을 상대하며,
한 사람이 휴대폰을 2개 이상 쓰거나 법인 회선까지 포함되면 매달 청구되는 요금의 총량은 생각보다 훨씬 커집니다.
이 구조의 핵심은 가입자가 한 번 묶이면 매달 반복적으로 돈이 들어오는 구독형 수익이라는 점입니다. 휴대폰 요금은 한 번의 거래로 끝나는 상품이 아니라, 매달 자동이체나 카드결제로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이기 때문에 통신사는 수백만, 수천만 회선에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확보합니다. 그래서 이동통신은 경기 변동이 있어도 비교적 견고한 업종으로 평가됩니다.
SK텔레콤은 거의 53%까지 한국의 이동통신 시장을 점유했던 적도 있었고, 2026년 1분기 기준 휴대전화 회선 점유율이 약 39퍼센트 수준이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집계에서도 전체 휴대폰 회선은 5천7백만 회선대, 전체 이동통신 회선은 9천만 회선대였습니다. 이 말은 SK가 전체 휴대전화 시장에서 여전히 가장 큰 고객 기반을 가진 사업자라는 뜻이고, 그만큼 매달 요금이 쌓이는 속도도 빠르다는 의미입니다.
회선당 만 원만 남겨도 매달 9천억 원이라는 계산은 설명용 비유로는 가능하지만, 실제 수익을 그대로 뜻하진 않을 것입니다. 통신요금은 망 유지비, 단말기 판매, 대리점 수수료, 콘텐츠와 부가서비스, 마케팅비, 주파수 비용, 설비투자, 감가상각 같은 항목이 모두 얽혀 있어서 매출 전체를 곧바로 영업이익처럼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고 놓여진 기간시설망을 사용하여 지금까지 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 금액이 많아도 너무 많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한 자금들을 매달 매달 수십년간 축적한 돈으로 지금 자기들끼리 재산분할 액수를 놓고 온국민의 관심을 끌고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 돈이 과연의 누구의 것이었던 것인데?
왜 국민은 성실하게 번 돈에 세금을 내고 그 출처를 설명해야 하는데, 과거 최고 권력자의 불법자금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그 행방과 성격을 놓고 국가기관이 다시 추적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남습니다.
그래서 국민은 묻게 됩니다.
매달 통신료를 내는 수천만 회선의 돈, 얼마 전까지 거리마다 가장 많았던 빨간색 SK주유소의 기름과 통신처럼 매일 혹은 매달 반복적으로 들어오는 현금흐름은 과연 누구의 몫이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통신은 한 번 팔고 끝나는 물건이 아닙니다.
매달 자동으로 빠져나가는 고정지출이고, 기름 장사 역시 생활과 산업 전반에 붙어 있는 반복 수익 구조입니다. 이런 사업은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현금이 지속적으로 쌓이고, 그만큼 자본과 권력이 결합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법과 제도를 이용해 공공성이 강한 산업에서 막대한 수익을 쌓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그 출발점에 권력형 비자금과 특혜 의혹이 겹쳐 있습니다. 반면 대다수 국민은 성실하게 일하고 세금을 내면서도, 집 한 채, 노후 한 끼, 자녀 교육비, 보유세, 종부세를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이 불균형이야말로 이 사건이 단순한 재벌가 이혼 소송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입니다.

한 시대의 최고 권력자가 군사반란과 권력 장악의 한복판에 있었고, 대통령이 된 뒤에는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나 그 가족의 재산을 둘러싼 소송에서 다시 수백억 원 규모의 불법자금 문제가 법정에 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에게는 질문할 권리가 있습니다.
평범한 국민에게 법과 세금은 그토록 엄격하면서, 권력과 부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왜 수천억 원과 수 조 원이라는 돈이 마치 다른 세계의 숫자처럼 등장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더 이상 이런 장면을 부자들의 흥미로운 구경거리로 소비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얼마나 더 부자인지를 감탄하는 일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 권력과 돈이 어떻게 결탁했는지를 끝까지 따져 묻는 일입니다.
불법으로 조성된 돈은 그 출처가 어디든 반드시 밝혀져야 하고, 환수할 수 있다면 환수해야 하며, 재발을 막을 제도도 더 촘촘해져야 합니다.
300억 원에도 법의 잣대가 같아야 하고,
300만 원에도 법의 잣대가 같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평범한 국민이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정입니다.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은 사적인 가족 분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송의 한복판에 전직 대통령의 불법자금과 국가 기간산업, 특혜 의혹과 부의 세습이 겹쳐지는 순간, 이 사건은 더 이상 사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과연 권력자와 평범한 국민에게 같은 법을 적용하는 나라인지를 묻는 사회적 사건입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부자에게 가난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권력자의 불법자금에도, 평범한 국민의 성실한 소득에도 똑같은 법의 기준을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그 원칙이 바로 서야만, 우리는 비로소 다음 세대에게 조금 더 공정한 나라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뉴스연대 김숭선 기자






